“조용한 살인자” 간섬유화, 고지혈증보다 더 위험한 간 노화의 진실
지방간? 그냥 두면 간이 굳는다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는 사람은 많습니다. “지방이 좀 낀 거니까 운동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죠. 하지만 그 지방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면, 단순한 지방간을 넘어 간섬유화라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간섬유화는 말 그대로 간 조직이 ‘굳어가는’ 현상입니다. 지방이 쌓이면서 만성 염증이 생기고, 손상된 간세포 주변에 섬유조직이 형성됩니다. 이 섬유조직은 한번 생기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점차 간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조용히, 증상 없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고지혈증은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가 올라가는 상태지만, 비교적 눈에 띄기 쉬워 조기 대응이 가능합니다. 반면 간섬유화는 피로감이나 소화불량 같은 비특이적 증상만 나타나다 보니 놓치기 쉽습니다. 정기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이더라도 간이 이미 상당히 손상되었을 수 있습니다.
간섬유화가 만드는 몸 전체의 대사 혼란
간은 우리 몸의 화학공장입니다. 당, 지방, 단백질 대사뿐 아니라 해독, 면역, 호르몬 대사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죠. 이 간이 섬유화로 인해 기능을 잃으면, 단순히 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신적인 대사 문제로 번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인슐린 저항성을 들 수 있습니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당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혈당이 쉽게 오릅니다. 이로 인해 체중 증가, 지방축적, 당뇨 전단계 같은 문제가 생기죠. 또 간은 지방을 저장하고 분해하는 기능도 하므로, 간이 굳어버리면 혈중 지질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이차적인 고지혈증이 생깁니다.
게다가 간은 갑상선 호르몬을 활성화시키고,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의 균형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간섬유화가 진행되면 피부, 체온, 생리 주기, 기분 등 전신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간섬유화는 간 질환이 아니라 전신 대사질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나이보다 ‘생활습관’이다
많은 사람이 간섬유화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나 ‘고령자’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만성 음주는 큰 위험요소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젊은 층에서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으로 인한 간섬유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운동 부족,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수면 부족, 만성 스트레스, 고도비만, 특히 내장지방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나이가 적어도 생활습관이 좋지 않으면 얼마든지 간섬유화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근이 잦고, 외식과 음료 섭취가 많은 30~40대 직장인이 위험군입니다.
문제는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측정하는 간수치(AST, ALT 등)가 간세포 손상만 반영하지, 간섬유화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이미 섬유화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섬유화 단계를 예측할 수 있는 FibroScan, MRE, ELF 테스트 등의 진단 기술이 있지만, 아직 일반 건강검진에는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간을 되살리는 생활, 섬유화를 되돌릴 수 있을까?
간섬유화는 간경변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한때는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대응하면 일정 부분 회복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섬유화 초기 단계에서는 간세포의 재생 능력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생활습관 개선이 핵심 열쇠입니다.
첫째,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은 여분의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정제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간 지방 축적을 가속화합니다.
둘째, 주 3~5회의 유산소 운동은 간 내 지방을 감소시키고 염증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셋째,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생활리듬은 간의 대사 리듬을 회복시켜줍니다.
또한 간세포 보호를 돕는 영양소로는 콜린, 비타민 E, 실리마린(밀크시슬 추출물)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조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식습관과 활동량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강한 간이 건강한 대사를 만든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립니다.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기보다는, 어느 순간 기능이 떨어지고 나서야 문제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침묵을 무시하다가는 늦게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지혈증이나 당뇨처럼 눈에 띄는 수치 변화만 좇다 보면, 정작 그 뒤에서 우리 몸의 대사 시스템을 뒤흔드는 ‘간섬유화’는 놓치게 됩니다.
이제는 간을 단순히 알코올이나 간수치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노화와 대사의 핵심 장기로 다시 봐야 할 때입니다. 내 몸의 에너지 균형, 호르몬 조절, 면역 시스템이 모두 간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늙어가는 간을 오늘부터라도 관리하세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일수록, 더 꼼꼼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