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은 장에서 시작된다: 알파시누클레인과 장내 신경 축의 연결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보통 손 떨림, 근육 강직, 운동 느려짐 같은 운동 이상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이 질환의 기원이 뇌가 아닌 장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알파시누클레인(alpha-synuclein)’이라는 단백질과 장내 신경계의 연결 고리가 밝혀지면서, 파킨슨병을 단순한 뇌 질환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이 글에서는 장-뇌 축(gut-brain axis)의 개념과 파킨슨병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이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까지 함께 살펴본다.
파킨슨병, 뇌보다 먼저 장에서 이상 신호가 시작된다
기존의 파킨슨병 이론은 뇌의 ‘흑색질’이라는 부위에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점 소실되면서 증상이 시작된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변비, 소화불량, 후각 저하, 수면장애 등을 겪는다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변비는 운동 증상보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비운동 증상들이 왜 파킨슨병에서 먼저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주는 핵심 실마리가 바로 장내 신경계와 알파시누클레인이다. 알파시누클레인은 뇌뿐 아니라 장의 신경세포에도 존재하는 단백질인데, 특정 조건에서 이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면 신경세포에 독성을 일으키고, 결국 뇌까지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장에서 시작된 단백질 이상이 미주신경을 타고 뇌로 전파되어, 파킨슨병의 전형적인 운동 증상을 유발하기까지 수년간 잠복기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파킨슨병의 발병을 훨씬 조기에 예측하고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알파시누클레인, 장내에서 어떻게 잘못 작동하는가
알파시누클레인은 원래 신경세포 내에서 시냅스 기능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감염, 독소, 장내 염증 등 특정 자극에 의해 이 단백질은 비정상적으로 접히고 응집되기 시작한다. 이때 형성된 응집체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프라이온처럼 퍼지는 성질을 가진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잘못된 단백질이 주변 세포로 계속 퍼지며 문제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장내 환경이 나쁘면 이런 알파시누클레인의 응집이 더 쉽게 발생한다. 장 점막이 손상되거나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장 신경계에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하고, 이는 단백질 변형을 유도하는 조건이 된다. 더 나아가 장벽이 느슨해지는 ‘장누수(leaky gut)’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독소나 병원균이 장 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주어 알파시누클레인 병리적 응집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병적 단백질은 미주신경을 따라 위→식도→연수→뇌간을 거쳐 결국 흑색질 영역의 도파민 신경세포를 손상시킨다. 이 경로가 바로 파킨슨병의 진짜 시작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뇌 축: 장과 뇌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장은 단순히 음식을 소화하는 기관이 아니다. 장에는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며, 이는 척수보다도 많다. 이 때문에 장은 ‘제2의 뇌’라고도 불린다. 이 장의 신경계는 미주신경을 통해 뇌와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연결 고리를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고 한다.
장은 뇌의 지시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뇌에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장내 세균이 분비하는 물질이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장에서 발생한 염증이 신경 전달물질 합성에 관여하는 예도 많다. 다시 말해, 장의 상태는 곧 뇌의 상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파킨슨병에서 장-뇌 축은 새로운 치료와 예방의 방향을 제시한다. 장내 염증을 줄이고, 미생물 균형을 유지하며, 장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알파시누클레인의 병적 변형을 막고, 뇌로의 전파를 차단하는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파킨슨병 예방, 이제는 장 건강에서 시작해야 한다
파킨슨병은 아직 완치법이 없지만, 조기 예측과 예방은 가능하다. 특히 장에서 시작되는 신경 퇴행 경로를 차단하는 전략은 발병 자체를 늦추거나 증상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장내 미생물 균형을 유지하는 식습관이 중요하다. 고섬유질 식단, 발효식품, 프리바이오틱스 섭취는 유익균을 늘리고,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고지방·고당 식사는 해로운 균의 증식을 유도하고, 장내 염증을 악화시킨다.
둘째, 장누수를 방지하는 생활 습관도 중요하다.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수면, 정제된 식품의 최소화는 장 점막의 건강을 지키고, 외부 유해물질의 침투를 막는다. 셋째, 만성 변비의 조기 관리가 필요하다. 파킨슨병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는 변비는 장내 신경 기능의 변화일 수 있으므로, 증상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와의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장-뇌 연결 경로에 대한 위험 요인을 조기에 점검하고, 유전적 요인이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맞춤형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 질환의 열쇠는, 의외로 장이 쥐고 있을지 모른다
파킨슨병은 단순히 신경세포가 죽는 병이 아니다. 그 시작은 장이라는 거대한 감각 기관에서 출발해 뇌로 퍼지는 장기적인 신경 전달의 오류일 수 있다. 알파시누클레인의 병적 응집은 단백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전체의 면역, 염증, 미생물 환경, 생활습관이 만들어낸 복합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뇌를 보호하기 위한 첫 걸음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뇌가 늙기 전에 장을 살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느끼는 스트레스, 반복되는 소화기 증상은 결국 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지금 장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말자. 뇌보다 더 빠르게, 더 조용하게 변하고 있는 장 속 세포들이 당신의 신경계를 향해 조용히 경고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